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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5-03-2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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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정구장 개장

 

초기 정구장터(현 야구부 숙소와 백작맨션 터)는 원래 경사가 심한 논밭(田畓)이었다.

당시 김영집 교장은 여기에 정구장과 수영장을 마련하기로 하고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수영장터로 작정하고 있던 곳은 경상북도 교육위원회의 계획에 의하여 경상북도학생도서관 터로 제공하는 바람에 그 계획이 백지화되고 정구장만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예산이 넉넉하지 못하여 직영으로 공사를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득이 대구시청과 2군사령부의 협조를 얻어 낮은 곳은 연탄재로 메우고 높은 곳은 불도저로 깎아내어 1967년 5월 16일 총 735평에 달하는 3개 코트를 마련하였다.

 

이 정구장을 만드는 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는데, 특히 연탄재를 이용하여 낮은 곳을 메울 때 먼지가 많이 나서 이웃 주민들이 크게 불평하고 반발함으로써 공사에 지장이 많았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양해를 얻었으나 막상 공사가 시작되고 보니 먼지를 보고 참을 수 없었던지 한번은 작업장에 쌓아둔 연탄재를 함지에 담아 가지고는 서무실 복도와 현관에다 뿌려 놓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참고 설득하고 양해를 구하면서 원래 계획대로 추진해 나아감으로써 멋진 정구장이 마련되었으며, 당시 여러 차례 전국을 제패한 대구고 테니스부가 존재하게 된 것도 이에서 말미암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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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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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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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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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8 회 전국 고교 초청 테니스대회 우승(197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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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6 회 전국체육대회 테니스부 우승(1975년 10월 12일)

 

창단 이후 3년 동안은 줄곧 선수조직과 선수 개개인의 체력단련, 기술연마 및 팀 전략구상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되어 좋은 전적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71년 경북춘계테니스선수권대회에서 당시 전국 최강을 자랑하는 대구상고를 제압하고 우승하게 되었는데, 이 대회가 실제로는 전국규모의 대회와 다름없는 경기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 선수들은 사기가 충천했으며, 나아가서는 우리 대고의 테니스도 전국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밝은 전망과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던 중 1972년 전국춘계종별테니스대회 개인 복식에서 김재구, 김영조 선수가 전국 3위에 입상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본교 선수들에게 큰 활력소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전력은 더욱 강화되어 한․일고교교환경기에 여상운 선수가 국가대표로 뽑히는 기쁨과 행운을 가져 왔다.

 

 전국제패의 꿈 실현

 

이와 같이 선수들이 전국정상에 오르기 위한 욕망에 불타 피눈물 나는 훈련을 거듭한 결과, 1973년 전국춘계종별테니스선수권대회 개인 복식에서 박은태, 김용수 선수조가 전국 강호들은 물리치고 당당히 우승함으로써 본교의 명예를 전국에 떨치게 되었다. 다만, 이 대회에서 단체전에 입상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전국체육대회에서 우승

 

그 후 제5회 문교부장관기대회 결승에서 숙적 대구상고에 패하여 애석하게도 2위에 머무는 불운을 맛보았으나, 본교의 전력은 더욱 굳어 가고 있었다.

 다시 제1회 소강배쟁탈전국테니스대회에서도 2위에 머무는 등 우승의 문턱에서 패하는 불운을 맞으면서 1974년을 맞았다. 이 해에 제18회 한성구락부초청전국우수선수권대회 개인 복식에서 전국 강호 16개 팀을 누르고 1위에 입상한 것은 두 번째로 차지한 전국제패의 영광이었다.

 

1976년 제11회 전한국주니어테니스선수권대회에서 김철, 최태경 선수조가 개인 복식에서 2위에 입상하고, 리틀부에서 박상곤, 마호경 선수가 3위에 입상하였으며, 1977년에는 더욱 알찬 계획과 강인한 체력 및 정신력을 바탕으로, 5월 충주에서 개최된 전한국주니어테니스선수권대회에서 황덕모, 김성국 선수조가 3위에 입상하는 전적을 거두었다.

 

소강배를 안고 돌아오다

 

1977년 7월 29일 서울 장충테니스코트에서 제5회 소강배쟁탈전국테니스대회가 개최되었다. 단체전에서 다소 부진한 본교팀은 대전시트에서 8번이라는 매우 불리한 시트로 결전에 임했다.

(중략)

오더(Order)에 의하여 첫 번째로 본교의 두뇌 플레이어인 황덕모(당시 2학년) 선수가 대구상고의 주장이며 한국 대표로 일본 원정까지 다녀온 국내 랭킹 1위인 이용수(당시 3학년) 선수를 2:0(6:3, 6:2)이라는 가벼운 스코어로 제압했을 경기장은 매운 수많은 관중은 황 선수에게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냈다. 이로써 경기의 실마리가 유리하게 풀려 나가는가 싶더니 두 번째 우리 박상곤 선수(당시 3학년)가 대구상고의 박종철(당시 3학년)에게 2:0(6:4, 6:3)으로 패하여 팀 점수가 1:1로 되어 예측을 불허하는 시합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복식에서 이길 것이란 자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선수들이 심한 피로 때문인지 2:0(6:4, 6:0)으로 패하여 우승은 기대하기 어려운 듯싶었다. 그래도, 우리 선수들은 조금도 용기를 잃지 않고 불사조의 정신으로 경기에 임했다. 네 번째의 우리 송우규 선수(당시 1학년)가 대구상고의 거구 최승엽을 맞아 장장 4시간에 걸친 불꽃 튀기는 접전에서 2:0(6:4, 6:0)으로 기권패시켜 팀 점수 2:2가 되자 관중은 흥분하기 시작하고, 우리 선수들도 긴장과 초조를 감추지 못했다.

이때가 하오 7시, 일몰이 되어도 경기가 정상 속행될 수밖에 없는 형편에서 복식경기 때 부상을 당하고도 기어이 이겨 보겠노라고 몸부림치던 마호경 선수(당시 2학년)가 손의 상처를 치료할 시간도 없이 응급조치만 한 후, 다섯 번째로 마지막 경기에 들어가 대구상고의 손석만(당시 2학년) 선수를 2:0(6:2, 6:0)으로 제압함으로써 마침내 또 한번 전국 재패의 영광을 차지하면서 대망의 소강배를 가슴에 안게 되었다.

(중략)

 

소강배 대회 대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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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대구상고 마포고

대구고 양정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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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3월 창단 이래 테니스부의 활동상황은 다음과 같다.

 

연번

활 동 명

월 일

장 소

전 적

참가팀수

비 고

1

테니스코트 3면 시설

1967.

5, 16.

교사 김재련, 이성재

2

테니스부 창설

1968. 3.

부장교사 : 남경희

(1968.3.1.∼1973.11.30.)

3

대외경기 참가.

대구구락부 조직

1969.

∼1970.

임정일, 이동선, 강윤식, 소우영, 조상훈

4

경북 주최

선수권대회 참가

1971. 11.

20.∼22.

대구코트

단체 1위

2팀

도내 대회에 출전

5

전국 춘계 종별

테니스선수권대회

1972. 4.

19.∼23.

원주1군

사령부

복식 3위

20조

전국규모대회 처녀출전

김재구, 김영조

6

한일 고교 교환경기

한국대표 선발

1972. 7.

5.∼8.

서울

장충코트

6위

60명

여상운 선수 선발

7

전국춘계종별대회

1973. 4.

3.∼8.

대구

사대부고

복식 1위

30조

김용수, 박은태

처음 전국재패

8

제1회 교육자대회

1973. 5.

10.∼12.

대구코트

단체 3위

17팀

본교 교직원

9

제5회

문교부장관기대회

1973. 6.

25.∼29.

서울

장충코트

단체 2위

박은태, 김용수, 김태열,

이태환, 권정혁, 김강수,

장준규

10

제1회 소강배대회

1973. 7.

서울

장충코트

단체 2위

박은태, 김용수, 김태열,

이태환, 권정혁, 김강수,

장준규

11

제2회 소강배대회

1974. 9.

1.∼6.

서울

장충코트

단체 3위

12팀

부장교사 : 이원영

(1973.12.1.∼1975.2.28)

12

제6회

문교부장관기대회

1974. 4.

22.∼25.

서울

장충코트

단체 2위

13팀

김태열, 이태화, 권순표, 권정혁, 장준규, 김광수,

김 철, 최태경, 박일구

13

제8회

한성구락부초청대회

1974. 4.

26.∼29.

서울

장충코트

복식 1위

16팀

김태열, 권정혁

14

제9회

전한국 주니어대회

1974 .5.

15.∼19.

서울

장충코트

복식 3위

20팀

15

제9회

한성구락부초청대회

1975 .5.

2.∼4.

서울

장충코트

단식 2위

권정혁

16

제56회

전국체육대회

1975. 10.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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