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고등학교로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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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5-03-2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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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학년도 경북대학교 입학시험에서 의예과를 지원한 본교의 류영구 군이 550점 만점에 480점을 얻어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경대학보 호외는 이를 크게 보도했다.

 

이 해에 본교 학생 중 경대 합격자는 문리대 18, 의예과 17, 공대 38, 상대 10, 법대 9, 사대 26, 농대 12 등 모두 130명이었다. 이 외에 서울대 6, 중앙대 7, 서강대 2, 인하대 4, 충남대 의예과 7, 고려대 23, 연세대 11 등이 합격하여 전기대에 총 190명의 합격자를 내었다. 3학년 재적생 470명에서 취직과 가사종사 학생을 제외하고 대학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자유 선택에 의한 진학이었다. 학부모는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도 본교 학생들의 면학 결과에 대해 찬사를 보내 주었다.

 

이에 즈음하여, 본교에서는 더욱 분발하여 획기적인 학교발전의 방안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에는 대구의 교육인구가 크게 늘고 교육에 대한 관심도 더욱 고조되어, 본교를 여러 가지 면에서 경북고교 수준으로 키워야 하겠다는 여론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본교 졸업생 및 재학생들과 교직원들의 숙원이기도 했다.

 

 

 

본교는 후기 입시고교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2차 시험에 합격했다는 열등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이리하여, 선발학생들의 질적인 문제를 고려하고, 학생들에게는 ‘우리도 1차시험에 합격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해 주기 위해서 1973학년도부터 전기입시교로 바꾸었다. 이 해부터 학급을 증설하여 12학급을 모집하게 되었는데, 처음 예상했던 대로 응시자가 2,980명이나 모여 들어 입시경쟁률이 4.7:1이나 되었다. 본교가 이렇게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을 때까지의 교직원과 학생들의 교육적 노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 학력 향상책(向上策)으로는 매월 정례고사에서 평균 90점 이상 득점한 학생에게는 교표가 들어있는 은메달을 수여하였고, 1년 계속 수상자에게는 학년말에 가서 금메달을 수여하였다. 앞에서 말한 경북대 전체수위 합격자 류영구 군은 학력 금메달 수상자였다.

 

결과적으로 1970년대 초반에는 학교의 시설 규모나 현황 면에서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외적인 확대와 병행하여 내적인 충실도 가해지면서 명실상부한 명문고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바탕으로 우리 대고의 교운(校運)을 걸고 학생들은 불철주야(不撤晝夜) 공부했고, 교직원들도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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